천 년도 수유(須臾)러니

2023.01.22 23:13

우민거사 조회 수:172

 

계묘년(癸卯年)의 설날이다.

새벽과 아침에는 일기예보처럼 꽤 추웠지만 낮에는 많이 풀렸다. 밤새 다시 기온이 크게 떨어질 거라고 하는데, 지나고 볼 일이다.

 

금당천변 산책을 하며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보고,

사당에서 차례를 지내고세배를 하고 받고산소에 다녀오고, 신륵사에 다녀오고...

촌노(村老)의 설날 풍경이다.

특히 이번 설에는 큰 손자인 세원(世源)이가 사당에서 조상님들께 데뷔 신고를 했다. 기뻐하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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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륵사에서는 검은 토끼를 보았다.

요새는 토끼 자체를 보기가 쉽지 않은데, 놀랍게도 검은 토끼의 해(癸卯年)에 걸맞는 검은 토끼 한 마리가 경내에서 놀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금당천에서는 무슨 연유인지 따뜻한 강남으로 가지 않고 홀로 남은 백로(白鷺)가 눈에 들어왔다.

검은 토끼와 하얀 백로라. 행운의 징표 아닐까.

 

아무리 세상사가 생각하기 나름이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지만,

검은 토끼와 하얀 백로를 보았다고 행운을 운운하는 것은 아무래도 억지 춘향의 견강부회(牽强附會)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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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와 백로에서 행운을 기대하기보다는

차라리 그들이 전해오는 봄소식을 기다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열흘 남짓이면 입춘(立春)이지 않은가.

 

그래서 촌부도 석성우(釋性愚) 스님처럼 설날에 봄소식을 기다려 본다. 그렁 그렁 걸어오려나, 날쌘 토끼처럼 달려오려나.

 

몸보다 겨운 숙업(宿業) 적막한 빚더미다
돌 속에 감춘 옥 천 년도 수유(須臾)러니
한 가닥 겨운 봄소식 그렁 그렁 걸어온다

 

그런데 봄소식을 기다리기에 앞서 할 일이 있다.

그냥 죽치고 앉아서 봄소식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그 봄을 맞을 채비를 해야겠다.

망가진 담장 손보고 밭이랑에 거름 내고,

겨우내 창에 켜켜이 내려앉은 먼지를 닦아 햇빛이 들어오게 하고.

, 추위에 동파(凍破)된 수도도 고쳐야겠구나.

이래저래 촌부의 겨울잠이 끝나간다.

 

하여 미당(未堂) 선생의 시에 새삼스레 눈길을 보낸다.

 

버려진 곳 흙담 쌓고 아궁이도 손보고
동으로 창을 내서 아침 햇빛 오게 하고
우리도 그 빛 사이를 새눈 뜨고 섰나니

해여 해여 머슴 갔다 겨우 풀려 오는 해여
5만원쯤 새경 받아 손에 들고 오는 해여
우리들 차마 못 본 곳 그대 살펴 일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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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새해에 새로 뜨는 새 해를 바라보며,

저 밝은 해가 우리 사회의 어두운 구석구석을 빠짐없이 비추어 광명천지로 인도하길 기도하자.

그래서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해지면 그 밖에 더 무엇을 바라랴.

 

Loving You-1-Kenny G.mp3 (Kenny G. Loving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