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과 더불어 느긋하게

2023.04.16 10:22

우민거사 조회 수:189

 

봄 가뭄이 심하여 많은 사람들의 애를 태우더니 요새 들어 비가 자주 온다.

닷새 후면 곡우(穀雨)이니 시절에 맞게 비가 올 만도 하다.

그래도 남쪽 지방의 물 부족을 해결할 정도가 아니라니 좀 더 와야 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불청객인 중국의 황사가 동시에 밀려올 것은 뭐람.

 

비가 온 김에 울 안에다 각종 작물의 모종을 심었다쑥갓, 들깨, 상추, 고추, 오이, 호박, 가지, 토마토, 옥수수...

그런데 이게 서툰 촌부(村夫)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먼저 지난해에 작물을 심었던 곳을 삽으로 일일이 뒤엎어 고르고 퇴비를 뿌린 다음 이랑을 만들어야 한다.

그 위에 비닐을 덮는다. 토양의 온도와 수분을 유지하고 잡초의 번성을 방지하여 작물이 잘 자라게 해 주기 위해서다.

비닐 덮기(mulching)를 마치면 비닐에 적당한 간격으로 구멍을 내 모종을 심고 흙으로 돋아준다.

그러다 보니 손바닥만한 울 안에서 작업을 하는데도 꽤나 긴 시간이 걸렸다.

다만, 호박이나 오이처럼 넝쿨이 지는 작물은 비닐 덮기는 하지 않고 별도의 장소에 독립하여 심는다.

 

힘이 들긴 해도 내심 뿌듯하다.

초여름부터 수확을 시작하여 늦여름 내지 초가을까지 식탁과 마음을 풍성하게 해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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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종 식재 작업을 마친 후 허리도 펼 겸 찻자리에 앉았다.

노반장(老班章. 보이차)과 우전(雨前. 녹차)1:3의 비율로 혼합하여 우려냈다.

촌부는 혼자 있을 때는 보이차나 녹차를 단독으로 마시는 것보다 이렇게 혼합하여 마신다.

뒤꼍의 진달래와 지붕에서 홈통을 타고 떨어지는 빗물이 찻잔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더불어 촌부의 마음에는 여유와 즐거움이 찾아든다.

그야말로 반소사음수(飯䟽食飮水)에 낙역재기중(樂亦在其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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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마시고 나서 사립문을 열고 금당천으로 나섰다.

비는 갰지만 하늘은 여전히 흐리다말 그대로 봄비가 잦아진 개울에 구름이 머흐레라이다.

비가 내린 덕분에 금당천의 물이 소리 내며 흐른다.  마치 어딘가 급히 갈 곳이 있어 달려가는 듯하다.

그렇다고 촌부까지 그 물을 따라 서두를 일이 아니다뒷짐 지고 천천히 걸으며 농사 준비에 바빠진 들녘을 둘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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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롭고 여유로운 정경을 눈에 담으며 두보(杜甫)의 시 강변 정자(강정. 江亭)’를 차운(次韻)해 흥얼거려 본다.

 

負手川邊曇(부수천변담)

長吟野望時(장음야망시)

水流心不競(수류심불경)

雲在意俱遲(운재의구지)

 

날 흐린 금당천을 뒷짐 지고 거닐다가

느릿느릿 시 읊으며 들녘을 바라본다.

흐르는 개울물과 겨루고픈 생각 없고

떠 있는 구름과 더불어 마음이 느긋하다.

[**두보의 시는 첫행이 坦腹江亭暖(탄복강정난. 따스한 강변 정자에 엎드려)”이다.]

 

자연을 벗 삼아 세월을 낚는 촌부야 아무리 느긋한들 뉘라 탓할 리 없지만,

아니 오히려 느긋함을 권할 일이지만,

느긋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 너무 느긋해서 문제인 경우도 있다.

 

여야(與野) 할 것 없이 전당대회 후 지지율이 정체되거나 오히려 하향세를 보여도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각종 여론조사마다 무당층의 비율이 계속 올라가고 있건만 그저 집토끼만 바라보는 모습이다.

국회의 입법 독주와 대통령의 거부권이 춤을 추어서야 어찌 백성들이 마음 편히 느긋하게 살아가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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