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도 생각지 못한

2023.08.27 23:07

우민거사 조회 수:132

   

                      꿈에도 생각지 못한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Kilimanjaro) 트레킹을 다녀오느라 3주 만에 금당천 우거(寓居)를 찾으니 풀에 덮여 있다. 가히 아프리카의 정글 수준이다.

    정원이(=작은 손주)의 돌보미에서 풀려난 집사람이 보름 전에 다녀가면서 풀을 뽑긴 했지만, 한여름의 잡초는 뽑고 돌아서면 바로 다시 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무섭게 자란다. 

    그래서 여름의 시골 생활은 풀과의 전쟁으로 시작해서 풀과의 전쟁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뽑고 뽑고 또 뽑고... 하다 하다 안 돼서 채소나 화초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곳에는 아예 제초제까지 뿌려보아도 역부족이다. 실로 놀라운 생명력이다.

 

    처서가 지났다고는 하나 아직은 말 그대로 곳곳에(處) 늦더위(暑)가 남아 있는 가운데, 이른 아침부터 그 풀들과 사투를 벌였다. 이내 물 흐르듯 샘솟는 땀이 온몸을 적신다. 잠시 허리를 펴고 땀을 훔쳐보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다. 

    일망타진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정리한 후, 전에 상추, 고추, 토마토를 심었던 자리를 고르고, 그곳에 배추 모종을 심고 무씨를 뿌렸다. 김장 준비를 위함이다. 이 순간만큼은 촌부도 농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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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 내내 입맛을 돋우어 주었던 상추와, 고추 그리고 토마토에게 감사할 일이다. 겨울에는 김장을 하기 위해 오늘 심은 배추와 무가 그 역할을 하리라. 

    사실 애써 기르느라 힘들일 필요 없이 시장(대형마트)에서 편하게 사 먹을 수 있지만, 농약을 뿌리지 않고 내 손으로 직접 기른 신선한 채소들을 바로 식탁 위에 올리는 맛에 어찌 비하랴. 아직도 수확이 가능한 호박, 오이, 가지를 따는 즐거움 또한 복지경에 땀을 흘린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조선 영조 때 문신 이 재의 흉내를 내본다. 

 

    샛별 지자 종다리 떴다 호미 들고 뜨락 가니

    긴 수풀 찬 이슬에 베잠방이 다 젓는다 

    아서라 시절이 좋을손 옷이 젖다 관계하랴

 

    아무튼 김장 배추와 무를 심는다는 것은 폭염과 폭우가 교차하면서 유난히 맹위를 떨쳤던 여름이 물러가고 가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음을 의미한다. 시간이 흐르면 그렇게 계절이 바뀌게 마련이다. 

    그런데 바뀌는 게 어디 계절뿐이랴. 세상만사가 다 시간의 흐름에 맞춰 바뀌고 또 바뀐다. 올가을에는 그중에서도 사법부가 변화의 길목에 놓이게 된다.

 

   도하(都下) 대부분의 언론이 공(功)보다는 과(過)를 더 이야기하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9월 24일 임기 만료로 퇴임함에 따라, 후임 대법원장 후보로 이균용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전 대전고등법원장)가 지명되었다. 

   그는 23일 대법원 청사 앞에서 기자들에게 “최근에 무너진 사법 신뢰와 재판의 권위를 회복해 자유와 권리에 봉사하고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바람직한 법원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성찰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앞으로 국회의 청문회와 의결을 거쳐 대통령이 정식으로 임명하는 절차가 남아 있긴 하지만, 향후 우리 법원은 어떤 식으로든 변화의 물결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변화의 물결은 어느 방향으로 흐를까. 아니 흘러가야 할까.

 

   이념에 매몰되어 상식을 초월하는 편향적인 결론을 내리고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하여 합리화하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결국 궤변에 지나지 않는 판결이 난무하고,  그 신분상 도저히 할 수 없는 말을 거리낌 없이 쏟아내며 머리는 여의도를 향하고 있는 법관들이 횡행하고, 재판의 지연으로 국민이 받는 고통은 외면한 채 이른바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을 앞세워 일신의 안락을 더 추구하는 풍조가 버젓이 판치는 사법부가 더 이상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법원의 그런 재판이 어떻게 국민의 존경과 신뢰를 받을 수 있겠는가. 존경과 신뢰는커녕 자칫 조롱거리가 될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재앙이다. 재판의 권위와 사법에 대한 신뢰가 더 이상 추락하는 것을 막고 이를 회복하는 일이야말로 새 대법원장이 추진하여야 할 최대 과제이다.  

 

    차제에 새로운 대법원장은 앞으로 대법관 임명을 제청할 때 동료나 선후배 법관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수 있는 인물을 천거할 필요가 있다. 아니 마땅히 그래야 한다. 

    며칠 전에 “문재인 정부 때 대법관들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인물들이 된 경우가 많았다”는 기사가 신문지면을 장식했다(중앙일보 2023. 8. 24.자 1면). 내용의 당부를 떠나 도대체 그런 모욕적인 기사가 유수의 중앙 일간지 1면에 실렸다는 사실 자체가 사법부로서는 얼굴이 화끈해지는 일이다. 그만큼 사법부의 권위가 추락하고 거의 동네북이 된 느낌이다. 

    최고 법원의 최고 지성으로 존경받아야 할 대법관이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인물”로 조롱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실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새 대법원장은 앞으로는 국민이 더 이상 이런 기사를 접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할 것이다. 부디 유념하길 기대한다.  

 

    가을의 전령인가,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들리는 밤이다. 구름 사이로 얼굴을 이따금 내미는 상현달이 왠지 파리해 보이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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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 8.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