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가을이 오리라

2024.08.25 00:48

우민거사 조회 수:254

 

   서울은 지난 밤(8월 23일)에도 열대야(18시부터 다음 날 9시까지 최저 기온이 25도 이상인 ‘더운 밤’)가 이어져 7월 21일부터 34일 연속이다. 1907년 근대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긴 기록을 연일 갱신하고 있다. 처서(處暑)인 지난 22일 강원도 삼척은 최고기온이 39도였다. 

 

    처서(處暑)라는 말의 의미가 “더위가 그친다 또는 물러간다”는 것이라고 흔히 설명하는데, 촌부가 보기에는 ‘곳곳에(處) 더위(暑)가 남아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즉, 이 무렵이 되면 기승을 부리던 한여름의 더위가 한풀 꺾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더위가 곳곳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어찌 해석하든 최고기온이 39도가 되어서야 말 그대로 한여름 복지경일 뿐, 더위가 그치니 어쩌니 할 계제는 아닌 것 같다.

 

   여름이 시작되었을 때는 장마가 유례없이 길어져 투덜댔는데, 그 장마가 끝나고 난 후 이어지는 폭염에 마음이 변해 다시 비가 그리워졌건만, 야속하게도 하늘이 계속 외면하여 전국이 바짝 말라가고 있다.

    8월 들어 20일까지 전국 평균 강수량이 46.7㎜로 지난해 같은 기간(160.5㎜)의 29% 수준이고, 심지어 강릉은 8월 들어 20일까지 강수량이 0.7㎜에 그쳤으니 더 말해 무엇 하랴.  

  

   비가 안 오니 벌들이 제 세상을 만난 듯 곳곳에서 활개를 친다. 그 바람에 지난 7월 28일 금당천변 우거에서 잡초를 제거하다 땅벌에 양손을 다 쏘여 사흘간 병원에서 수액을 맞아야 하는 불상사를 겪었다(땅벌이 말벌보다 크기는 작아도 더 독하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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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에 쏘인 양손]

 

 

   겨우 진정을 해서 몽골 트레킹(8/10~8/15)을 다녀온 후 지난 주말에 다시 우거에 내려와 잡초를 뽑는데(한 주만 걸러도 집안이 밀림지대가 된다), 이번에는 머리 위에서 윙윙하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고 쳐다보다 기절할 뻔했다. 원 세상에, 거대한 말벌집이 금방이라도 촌부를 덮칠 듯이 노려보고 있는 게 아닌가.

   급히 119로 연락하였고, 이내 소방관이 출동하여 화염방사기로 벌집을 태워 제거하였다. 벌집에 있다가 불에 타 땅바닥에 떨어진 말벌의 시체가 봉산봉해(蜂山蜂海)라면 지나친 과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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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벌집과 말벌의 시체]

 

 

   이처럼 여름이면 언제나 겪어야 하는 장마와 더위인 까닭에 매년 그때가 되면 으레 ‘장마가 시작되었구나’, ‘더위가 시작되었구나’ 하며 몸과 마음이 준비를 하였는데, 점점 더 아열대화되어 가는 기후에 이제는 적응이 예전처럼 쉽지 않다. 어찌할 거나. 나이 탓을 하기에는 왠지 찜찜하다.

 

   그나저나 아무리 덥고 힘이 들어도 밥은 먹어야 하는 법, 오늘도 ‘배고픔에는 휴일이 없기에’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분들이 계시는 원각사 무료급식소에 갔는데, 뜻밖의 귀인(貴人)이 오셨다. 조희대 현 대법원장님이 급식 봉사를 하러 오신 것이다. 

    지난해 12월 대법원장에 취임하신 후 기회가 되면 한번 오시겠다고 하셨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여건이 쉽게 허락하지 않아 미뤄졌는데, 오늘 모처럼 여유가 생겼다며 어려운 발걸음을 하셨다.

 

    사전에 아무런 예고가 없었고, 더구나 혼자 오셔서 다른 봉사자들이 적지않이 당황했지만, 워낙 소탈하고 점잖은 선비이신지라 두 시간 동안 직접 300여 그릇의 밥을 푸시면서도 힘든 내색을 전혀 안 하시며 다른 봉사자들을 편하게 해 주셨다.

 

    사실 이 더위에 뜨거운 커다란 밥솥 앞에서 그 정도의 밥을 푼다는 것은 여간 덥고 힘든 일이 아니다. 한 마디로 말해 자비의 보살행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대법원장님께 새삼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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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색 셔츠를 입고 밥그릇을 들고 계신 분이 대법원장님]

 

   대내외적으로 경제 상황이 악화되어 곳곳에서 더위보다 더한 아우성이 들리는 작금이다. 이럴 때일수록 무책임하게 번지르르한 말만 늘어놓으며 오히려 뭇 백성들의 복장을 터지게 하는 위정자(僞政者)들보다는 어려운 백성과 이웃에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가는 철인(哲人)이나 현인(賢人)을 그리워하는 게 인지상정 아닐까. 

   예로부터 가빈즉사양처(家貧則思良妻)하고 국난즉사양상(國亂則思良相)한다고 하지 않던가.

 

   급식 봉사를 마치고 오후 늦게 금당천으로 내려오니 들판이 황금색을 띠기 시작했다. 장마가 기니, 더위가 심하니, 인간은 불평의 연속이지만, 자연은 모르는 사이에 본래의 순서에 맞추어 변해 가고 있다.

   곧 가을이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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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우 - 01 - 8월의 크리스마스 Love Theme - 192k.m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