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백 년을 살고 있다

2024.10.18 20:52

우민거사 조회 수:155

 

    목하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요 국가 국민의 평균 수명은 대체로 83-84세 정도이다. 그나마 생존 연령이 그렇다는 것이지 스스로 활동할 수 있는 연령은 그보다 낮을 것이다. 

   그러기에 판소리 사철가에는 “인간이 모두가 백 년을 산다고 해도 병든 날과 잠든 날 걱정 근심 다 제하면 단 사십도 못 살 인생”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게 뭇 사람의 일반적인 모습이고, 올해 104세인데도 왕성한 활동을 하시는 김형석 교수님 같은 분은 극히 예외이다. 

 

   그런데, 만일 인간이 하루를 열흘처럼 산다면 어떨까.

   그렇게 50년을 살면 500년을 사는 셈이 되지 않을까. 

 

   서초동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는 지금 조계종 종정이신 성파(性坡) 스님의 선예(禪藝) 특별전(2024. 9. 28-2024. 11. 17.)이 열리고 있다. 올해 연세가 85세인 스님이 40년 넘게 몰두하여 오신 염색, 회화, 조소, 도자기, 서예, 사경(寫經) 등 여러 분야에 걸친 작품 12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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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촌부는 지난 10월 1일에 그 전시회를 보러 갔는데,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탄성이 절로 나왔다.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면서 평면과 3차원 공간을 종횡무진 누빈 작품들을 보노라니 ‘이게 과연 스님의 작품인가, 그 어떤 전문 예술가인들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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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장을 막 나오려는 순간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를 강조하시는 스님의 큰 울림이 촌부의 발길을 붙잡았다. 

 

   “도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평상의 마음이 도다. 이 작품들은 나의 평상심으로 작업한 결과물이다. 물 흐르듯이 흐르고 바람 불 듯이 걸어간 삶의 자취들이다. 작업하는 과정은 늘 즐거웠다. 어찌 보면 새로운 시도이고, 무(無)에서 유(有)가 나오는 이치의 장(場)이었다. 운문 선사의 말처럼 나에게 일상은 ‘날마다 좋은 날’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스님은 한 분야도 어려운데 그 많은 분야를 어떻게 그리 다 소화해서 대작을 남기실 수 있느냐는 질문에 한 마디로 “나는 오백 년을 살고 있다”고 일갈하신다.

 

 

    성파스님의 선예전에서 받은 감동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던 10월 9일 한글날에 경산 반룡사(盤龍寺) 혜해 스님의 안내로 찾은 청도 운문사에서는 또 다른 감동의 물결이 몰려왔다.

 

   서기 560년(진흥왕 21년)에 창건된 운문사(雲門寺)는 청도의 호거산(虎距山)에 있는 우리나라 최대의 비구니 사찰이자 비구니 교육기관이다. 운문승가대학은 2023년까지 무려 2,193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멀리서 찾아온 객을 반가이 맞이해 주신 주지 은광 스님은 사회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1991년 운문사에서 출가한 이래 33년 동안 오직 이 절에서만 수행하셨다고 한다.

   대저 많은 스님들이 궁극적으로 한 곳에 정착하기 전까지 이 절 저 절을 거치는 게 다반사인데, 33년간 한 우물만 파셨다니 놀랍다. 연세에 비해 젊고 아름답게 보이신다고 했더니 미스 코리아 선발대회에 나가야겠다며 해맑게 웃으신다.

 

   그 주지 스님의 안내로 운문사 역사문화관을 둘러보았다.

   지난 9월 25일에 처음 문을 연 이 역사문화관은 운문사 천년의 역사와 문화기록을 보존하는 공간이다. 운문사가 보관하고 있는 불교문화재 1,250점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순차적으로 전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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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 역사문화관]

 

 

   지금 전시되어 있는 많은 전시물 중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운문사 회주 명성(明星) 스님과 관련된 것들이다.

   올해 연세가 94세인 스님이 1952년 출가하신 후 “매사에 진실하라(卽事而眞)”는 좌우명으로 50년 넘게 수행하여 오신 행장과 남기신 물품, 작품들이 전시장에 진열되어 있다. 

 

   불도를 닦는 수행자이시건만, 스님의 서예는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고, 서예 연습용으로 사용한 화선지를 꼬아서 만든 정교한 지승공예품들은 보는 이의 눈을 휘둥그렇게 한다.

   이에 더하여 스님의 정갈한 육필 원고, 1원 단위까지 꼼꼼하게 기재한 금전출납부, 정성껏 사경한 불경 등 시선에 들어오는 하나하나가 촌부의 입을 벌어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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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문사를 전국 최대의 비구니 도량으로 만드는 일도 참으로 힘드셨을 텐데, 도대체 언제 이 많은 작품들을 남기셨을까. 가까이 계시면 여쭤보련만 그러지 못해 아쉽다. 그런데 만일 문답이 성사된다면 그 대답은 이렇지 않을까.

 

   “나는 오백 년을 살고 있다.”

 

   절문을 나서면서 문득 오백 년을 살고 있는 사람이 어찌 두 분 고승(高僧)뿐이랴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탐진치(貪瞋痴)의 과욕이 불러온 업보가 쌓이고 쌓여 하루하루(一日)가 여삼추(如三秋)처럼 느껴질 사람들 또한 오백 년을 살고 있지 않을까. 

 

   차이가 있다면, 같은 오백 년을 살아도 일상이 ‘날마다 좋고 진실한 날’인 분들이야 그 오백 년이 말 그대로 열락(悅樂)의 세계이겠지만, 겹겹이 둘러친 두터운 방탄 철조망 뒤에서 가슴을 졸이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나날의 삶이 고통이 아닐는지.

 

   이런 극단적이 차이는 어디서 유래하는 것일까. 잘은 몰라도 삶이 열락이냐 고통이냐는 마음 하나 어떻게 먹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닐까..

   헛된 욕심을 내려놓는 평상의 마음, 실로 쉬우면서도 어려운 화두(話頭)이다.

 

  가을비가 요란하게 창을 두드리는 밤이 깊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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