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년(乙巳年) 설 명절의 긴 연휴가 시작되는 날이다. 

  소·대한(小·大寒)이 다 지나고 입춘(立春)이 열흘도 안 남아서인지 겨울치고는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정작 설날이 되면 최저기온 영하 10도 안팎의 추위가 찾아올 것이라고 기상청에서 예보를 하고 있지만, 그런다고 다가오는 봄을 어찌 막으랴.

  꺼지기 직전의 장작불이 잠깐 반짝 타오르는 것과 진배없지 않을까 싶다.

 

   설 명절의 연휴가 공식적으로 6일(1월 31일 하루 휴가를 내면 무려 9일)이나 되다 보니 인천공항의 출국장이 북새통이라고 한다.

   원활한 출국을 위해서는 적어도 비행기 출발 시각의 4시간 전까지는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고 하니 놀랄 일이다. 시국이 하 수선하니 한국 대탈출(Exodus)이라도 하려는 건가. 

   정부가 1월 27일을 임시공휴일로 정한 것은 내수 진작을 위한 것이라는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려나.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엉뚱한 사람이 버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어제(1/24)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덕수궁 석조전)에서 전시하고 있는 수묵별미(水墨別美) 한·중 근현대회화전을 잠깐 둘러본 후,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공여하고 있는 ‘마당놀이 모듬전’을 관람하였는데, 전시장소나 공연장소가 비록 실내이기는 해도 워낙 공간이 넓어 웬만하면 추위를 느낄 법 하였지만, 바깥 기온이 영상(零上)이다 보니 두꺼운 외투가 오히려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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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중 근현대회화전은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과 중국의 국립미술관인 중국미술관이 공동으로 주최한 것으로, 두 나라의 근현대 수묵채색화 걸작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기존의 서구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 동아시아의 자주적인 관점으로 미술사를 조망해 보려는 전시 의도에 걸맞게, 인물화, 산수화, 화조화 등 전통적인 장르부터 현대의 구상, 추상 작품까지 아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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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창 : 군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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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룽 + 저우뤄란 : 회오리바람]

 

   그러나 아쉽게도 이름을 전혀 들어보지 못한 중국 화가들은 물론이고, 수많은 한국 화가들도 몇몇 귀에 익은 대가들 외에는 대부분 생소하여 수박 겉 핡기의 관람에 그치고 말았다. 

   결국 그림에 조예가 깊지 못한 문외한인 촌부로서는 ‘동아시아의 수묵채색화가 어떻게 전통을 계승하고 현대적으로 발전해왔는지 보여 주겠다’는 기획자의 거창한 의도에 선뜻 다가가지 못하였다. 

    

   그에 비하여 국립극장의 마당놀이 모듬전은 친숙했다.

   마당놀이의 원조(요새 흔히 하는 표현으로 ‘전설’) 윤문식, 김성녀, 김종엽을 비롯하여, 신구(新舊) 창극배우들이 춘향전, 심청전, 흥보전을 한데 엮어(그래서 ‘모듬전’이다) 시원한 풍자와 익살스런 해학으로 관객을 웃기고 울렸다. 

   출연자들이 주고받고 노래하는 대사들이 귀에 익숙하기에 깊이 빠져들었고, 3시간 가까운 공연시간이 지루한 줄 몰랐다.

   촌부가 판소리를 배운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심청가 창극에 출연했다가(곽씨부인 상여꾼, 남경장사 선원, 충청도 봉사 역) 눈물 콧물 다 흘렸던 기억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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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놀이 모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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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봉사]

 

   둘 다 같은 날 보고 들은 것인데, 회화전과 마당놀이가 촌부에게 이처럼 다르게 다가오는 것을 보면, 세상만사는 역시 아는 만큼 보이고 들리는가 보다. 

 

   지난해 12월 3일의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가 유발한 혼란 속에서 헌법, 탄핵, 위헌, 개헌, 내란죄, 공수처, 헌법재판소 등의 용어가 갑남을녀(甲男乙女)의 입에 무시로 회자(膾炙)된다. 그것은 더 이상 법조인들만의 전문용어가 아니게 되었다. 

 

  ‘법 없이 살 수 있는 사람’, 그래서 ‘법을 모르고 사는 사람’이라는 말이 보여주듯,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삶을 살아 법과는 무관하게 지내는 게 본래 사람이 참되게 지향하는 모습 아닐까.

   그래서 법은 아는 만큼 보이지 않아도 좋으련만, 이제는 어쩌다 아는 만큼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온 국민이 헌법 박사가 될 판이니 이를 어찌할 거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내란죄 수사를 둘러싸고 첫 단추가 이상하게 꼬여 경찰, 검찰, 공수처의 권한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질 않고, 급기야 공수처로부터 사건을 송부받은 검찰이 신청한 대통령에 대한 구속기간 연장 청구가 법원에서 거푸 기각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제발 법은 아는 만큼 보이지 않아도 좋으니, 온 국민에게 법률 공부를 시킬 생각 말고 관계 기관들이 제대로 정도를 걸어 백척간두의 혼란한 시국을 속히 정리해 주길 소망하여 본다. 

 

  답답한 마음을 아름다운 여인의 고운 눈썹 같은 갑진년(甲辰年) 마지막 그믐달 월광보살님에게 전하면서 하소연해볼거나.

 

  “부디 이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케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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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베이그의 노래.m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