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범함 속의 위대함
2025.04.26 23:53
바야흐로 봄이 무르익어가고 있다.
백곡(穀)을 기름지게 하는 봄비(雨)가 내린다는 곡우(穀雨. 4월 20일)의 절기답게 지난 토요일 주말인 19일에는 종일 비가 대지를 적셨다.
이날 원각사가 연산군에 의해 폐찰된 지 520년 만에 다시 자리를 잡은 것을 기념하는 법회가 탑골공원에서 개최되었는데, 행사 내내 비가 내렸다. 하늘도 원각사의 부활을 축하하여 상서로운 비를 내려보낸 것이라고 자위하기도 하였지만, 축축하고 쌀쌀한 날씨가 내심 그리 반갑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수많은 사부대중(四部大衆)이 모여 함께 축하하고 1993년 이래 32년 동안 연중 하루도 거르지 않고 무료급식을 실시해 온 자비의 도량으로서 앞으로도 계속 보살행을 이어갈 것을 다짐했다. “배고픔에는 휴일이 없다”는 표어를 새삼 떠올렸다.
그로부터 1주일이 지나 오늘 다시 찾은 원각사의 무료급식소는 변함없이 성황이었다. 밥을 고봉으로 드시고도 더 달라고 하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반도 안 드시는 분도 있는 등 천차만별이었지만, 식사 후 급식소를 나가시는 한 분 한 분의 얼굴에서 따뜻한 밥 한 끼의 행복을 엿볼 수 있는 게 크나큰 보람이다.
밥이 맛있어서 내일 또 오겠다는 분이 있어 언제든지 오시라고 하니까 웃으시며 나가신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의 인정(人情)이라는 것이 거창한 게 아니다. 보잘것없는 밥 한 그릇일망정 그 밥그릇 위로 따뜻하게 오고 가는 훈훈한 마음 씀씀이가 바로 인정(人情)이다.
비록 드러나 보이지는 않아도 사회 곳곳에서 그런 인정이 살아 숨 쉬고 있는 덕분에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이 아닐는지. 그런데 정작 우리 사회를 올바르게 이끌어가야 할 정치판은 나날이 점입가경이니 어쩔거나.
지난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결정으로 6월 3일에 다시 대통령 선거를 하게 되었는데, 민주사회에서 선거는 축제의 장이라는 말은 장롱 속에서나 찾으라는 것인지, 장삼이사(張三李四)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여 보기에 민망하다.
한쪽 당의 유력후보는 벌써 대통령이 된 듯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고, 다른 한쪽 당에서는 후보들이 수준 이하의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어 대중의 외면을 자초한다. 그런데 정작 그들은 국민의 따가운 눈총을 아는지 모르는지 개선의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나저나 이런 조기 대선의 사태를 야기한 당사자가 반성하거나 자숙하기는커녕 ‘이기고 돌아왔다’며 개선장군 행세를 하는 데는 입이 벌어진다.
“옛날의 군자는 허물이 있으면 고쳤는데, 지금의 군자는 허물이 있어도 그것을 따른다(古之君子 過卽改之, 今之君子 過卽順之. 고지군자 과즉개지, 금지군자 과즉순지)”고 했던가. 맹자(孟子)가 일갈한 말인데, 그로부터 2000년도 더 지난 지금에도 어쩌면 그리도 피부에 와 닿는지 모르겠다.
“하늘이 내리는 재앙은 피할 수가 있어도 스스로 지은 재앙은 피할 수가 없다(天作孼 猶可違, 自作之孼 不可活. 천작얼 유가위, 자작지얼 불가활. 서경<書經>에 나온는 말이다)”는 말을 들려주고 싶다.
지금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종잡을 수 없는 폭주로 인해 세계 경제가 비명을 지르고, 우리나라 경제도 마침내 역성장의 국면으로 접어드는 등 실로 힘든 시기이다. 그런 판에 조기 대선일까지 40일도 안 남았다.
가장 쉬워 보이는 것에 어려움이 있고, 가장 평범해 보이는 것에 위대함이 있다고 했다. 대선이 부디 순리에 맞게 진행되어 평범함 속에 위대한 빛을 발하는 지도자가 선출되어 진정 이 나라를 제대로 이끌어 나가길 고대한다. 대한민국의 국운이 벌써 다해서야 되겠는가.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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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어서 먹는 밥에선 행복이 느껴지네요.
이 절실함과 행복함을 동시에 선사하는 원각사 봉사팀으로 차기 정부가 꾸려친다면 그 곳은 곧 불국토가 될 터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