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사전에 내린 서설(瑞雪)
2025.03.30 11:15
열흘 전(3.20.)에 춘분이 지나고 완연한 봄인가 했더니, 어제 갑자기 수은주가 뚝 떨어지고 함박눈이 쏟아졌다.
마침 돈암동 흥천사(興天寺)의 약사전 현판식에 참석하느라 절에 있었는데, 활짝 핀 홍매화 및 목련꽃 떨어지는 눈송이가 절묘한 조화를 이뤘다.
펑펑 쏟아지던 눈이 그치면 눈이 부시도록 파란 하늘이 열리고, 그 청명한 하늘색에 눈길을 빼앗겨 있노라면 다시 눈발이 휘날리는 기이한 풍경이 수차례 반복되었다.
약사전 현판식을 하늘도 기뻐하여 축하의 선물로 서설(瑞雪)을 보내 준 것이 아닐는지.
흥천사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가 신덕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1397년(태조 6년) 창건한 절이다. 그 후 60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부침을 거듭하여, 화재로 전소하기도 했고, 한때는 신흥사로 불리기도 했다. 왕실의 지원으로 건립된 절 답게 지금도 대방(大房)에는 흥선대원군의 친필 글씨 “興天寺” 현판이 걸려 있다.
[흥천사 대방 현판의 대원군 글씨]
이 유서 깊은 절이 부침을 거듭하는 가운데 근래에는 거의 폐허나 다름없는 상태였는데, 2011년 금곡스님이 주지로 부임하여 15년 동안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신 끝에 지금의 번듯한 절로 재탄생하였다.
흥천사의 중창 불사를 진두지휘하시며 사부대중을 이끌어오신 금곡스님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흥천사 중창 불사의 일환으로 건립된 약사전의 현판식이 오늘 거행되었는바, 촌부는 분에 넘치게 현판의 글씨를 쓴 필객(筆客)의 자격으로 참석하였다. 약사전은 약사여래불을 주불로 모신 법당이다.
[약사전]
[현판식]
[약사전 현판]
약사여래불을 모신 법당의 현판 글씨를 장안의 내로라하는 명필들을 놔두고 촌부가 쓴 것은 개인적으로는 가없는 영광이지만, 새로운 불교성지로 환골탈태한 흥천사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않을까 저어된다.
촌부에게 현판 글씨를 쓸 기회를 주신 금곡스님께 정녕 감사할 일이다. 나아가 촌부의 부족한 글씨에 힘을 불어넣어 완성하신 서각가 조정훈님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약사여래불은 중생의 질병을 고치고 아픔을 어루만져 주시는 부처이다.
개인의 몸과 마음에 든 병고(病苦)만이 아니라 질시와 원망과 적개심에 불타는 사람들로 붐비는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사랑과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 건강하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이끌어 주는 자비의 부처이다.
작금의 갈기갈기 찢어지고 퍼렇게 멍든 우리 사회에 자비와 포용의 등불을 밝혀 바른길로 인도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나무약사여래불~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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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수
2025.03.30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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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거사
2025.03.30 15:41
신필작가님,
과찬의 말씀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건승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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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다인
2025.03.30 13:22
참으로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많은 지식을 얻었네요 -
우민거사
2025.03.30 15:41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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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텃골
2025.03.30 14:49
藥師殿 글씨가 대법관님 글씨라구여?
와우!
대단하세여.
법당 건축물 현판은 당대의 고승들이 주로 쓰는 줄 알았는
데 그 반열에 드신거군여.
법당이 더욱 돋보입니다.
언제 설 가면 가 봐야겠습니다.
멋져여. -
우민거사
2025.03.30 15:43
그러지유~
지가유, 주제 넘은 짓을 혔구먼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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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sy
2025.03.31 09:13
현판 글씨보러 흥천사에 일부러 가야겠습니다.
오래오래 남을 멋진 흔적을 남기셨습니다. -
우민거사
2025.03.31 09:58
일부러 가실 것까지는 아닌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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藥師殿현판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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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장드립니다
秋山 權炳銖합장배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