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 안개 길을 막아

2025.12.20 22:03

우민거사 조회 수:81

  

   어느새 올해도 열흘밖에 안 남아, 이틀 후(1222)면 동지(冬至)이다.

 

   푸른 뱀(靑蛇)의 해인 2025년 을사년(乙巳年)이 시작될 때,

   올 한 해가 만물의 생성을 상징하는 봄의 색인 푸르름과 조화를 이루는 업구렁이(業蟒. 업망)의 해가 될지 아니면 세상사에 해만 끼치는 사악한 독사(毒蛇)의 해가 될지 도무지 예측을 할 수 없어,

   촌부는 그저 지난해 말의 뜬금없는 계엄령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이 수습되어 온 국민이 편안하게 발을 뻗고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소망을 품었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 보면,

   한낱 촌부의 그 소박한 소망조차도 너무 사치스러웠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내외적으로 이렇게 1년 내내 혼란스럽고 힘든 시절을 보낸 적이 전에도 있었던가.

   촌부의 아둔한 머리로는 그런 기억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지구촌 여기저기서 소수 권력자들의 탐욕에서 비롯된 전쟁으로 대형 미사일이 민가를 초토화시키는 참상이 끊이지 않고, 강대국 지위를 악용하여 경쟁적으로 쏟아붓는 관세 폭탄들에 상대적 약소국들의 등골이 휘고 있다,

 

   대외적인 환경이 이러하다면 나라 안에서나마 정신을 차리고 힘을 모아 제대로 살아갈 길을 찾아야 하련만,

   툭하면 일어나는 사고, 바닥을 모르는 불황, 천정을 모르는 집값 등으로 인한 장삼이사(張三李四)의 고통은 내 몰라라 한 채, 오히려 조자룡이 헌 창 쓰듯 무소불위로 권력을 휘두르는 위정자(僞政者)들이 선한 백성의 이마에 주름살만 늘게 한다.

    급기야 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하는 조치들의 위헌성을 지적하는 소리를 한갓 서생의 잠꼬대로 치부하는 국면에서는 할 말을 잊게 한다.

 

   너도 살고 나도 살자는 공생의 논리 대신,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깡패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 과연 희망이 있을까.

   그런데 그런 세상을 만드는 일에 팔 걷어붙이고 앞장섰고, 앞장서고 있는 사람들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시장, 도지사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줄줄이 나서는 것은 또 뭐람.

 

   비록 지금은 옛날 왕조시대에 비하여 권위와 힘이 약해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명색이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으로 회자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현 대통령이 취임한 지 겨우 6개월 정도 지난 마당에 '5년 임기가 너무 짧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는 것을 보면서, 최고 권력자가 방귀를 뀌자 측근의 간신배가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고 아부를 했다는 전설적인 우스개 소리가 떠올라 씁쓸하기만 하다.

   속담에 미워하면서 닮는다고 했던가, 그들이 증오하다시피 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삼선개헌(三選改憲) 전철을 밟기라도 하겠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동지(冬至)를 눈앞에 두고 있는데, 오늘은 철에 어울리지 않게 종일토록 빗방울이 오락가락했다. 응당 눈이 와야 할 시기에 웬 비람?

   똥오줌 못 가리고 좌충우돌하는 사람들이 천방지축으로 마구 설쳐대는 세상이다 보니, 그에 휩쓸려 계절마저도 우와좌왕하는 것인가.

 

    금당천변의 만리무중(萬里霧中) 풍경만큼이나 앞날이 안 보이니 이를 어찌할꼬. 천하일미로 손꼽히는 진관사의 동지 팥죽으로 시름 전송을 하여 볼거나. 

 

   만리 안개 길을 막아 천지가 막막한데

   묻노니 이 나라는 어디로 돌아갈꼬

   종소리만 차가울 뿐 새벽은 아니 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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