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小雪)과 억새

2025.11.22 23:13

우민거사 조회 수:115

 

   오늘이 소설(小雪)이다. 

   본래 첫눈이 내린다는 날인데, 작년처럼 올해 소설도 날씨가 포근했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평년기온보다 대략 4-5도 정도 높았다.

   작년에는 소설이 지난 며칠 후에 느닷없이 폭설이(그것도 습기를 잔뜩 머금은 습설이) 쏟아지는 바람에 수목에 적지 않은 피해가 발생했는데(우거<寓居>에서는 이때 피해를 입은 수양벚나무가 끝내 회생을 못하고 죽었다), 올해는 적어도 일기예보상으로는 그런 일이 없을 듯하다. 

 

   포근한 날씨 덕분인지, 절기가 소설(小雪)임에도 원각사의 무료급식소를 찾으신 어르신이 294분이나 되었다. 그분들을 위하여 콩밥, 계란찜, 부추무침, 해물완자, 김치와 북어국으로 점심을 차렸다. 그리고 식사를 마친 분들께는 추가로 두유를 드렸다. 서초반야회의 회원들 11명이 합심하여 정성껏 모셨다. 모처럼 날씨가 좋은 주말을 무료급식 봉사활동에 할애하여 준 님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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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식을 마치고 모처럼 찾은 하늘공원에는 억새가 한창으로, 그 풍경이 가히 장관(壯觀)이라 할 만했다.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시작되는 길목인데도 역시 포근한 날씨 덕에 그 멋진 모습을 보려고 온 사람들로 붐볐다.

   이곳은 본래 서울 시내 곳곳에서 발생한 쓰레기를 모아 놓은 곳이었는데(난지도 쓰레기장), 말 그대로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되어 지금은 시민들의 쉼터이자 관광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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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아름다운 정경을 보면서 소동파(蘇東坡)의 흉내를 내 본다.   

 

   荷盡已無擎雨蓋(하진이무경우개) 

   菊殘猶有傲霜枝(국잔유유오상지)

   一年好景君須記(일년호경군수기) 

   最是楓紅芒白時(최시풍홍망백시)

 

     연꽃은 이미 지고 비 가려줄 잎조차 없지만

     시든 국화는 찬 서리에도 줄기 아직 꿋꿋하네

     일 년 중 가장 좋은 풍경, 그대 꼭 기억하소

     단풍이 붉게 물들고 억새가 하얗게 핀 이 시절이 최고라오

    

*** 소동파의 원시는 4행이 “最是橙黃橘綠時”(최시등황귤록시. 귤이 노랗게 익고 그 잎이 푸르디푸른 이 시절이 최고라오)이다.

 

   촌노가 소동파 같은 명사(名士)가 아닌 마당에 억새가 하얗게 핀 이때가 일 년 중 최고로 아름다운 계절이라고 감히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아무튼 하늘공원의 억새는 정말 볼 만하다. 유명한 영남알프스의 100만 평에 이르는 억새밭에야 못 미치나, 서울의 한복판에서 이런 구경을 할 수 있다는 게 어딘가. 

 

   그런데 흔히 ‘서울촌놈’이라는 표현이 있듯이, 서울의 천만 명 인구 중에는 하늘공원의 억새를 보지 못한 사람들이 필경 적지 않을 듯하다. 아니 그런 곳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감히 말하고 싶다. 가 보라고! 가서 그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아보라고! 

    

   겨울을 맞는 시점의 단상은 여기서 그치자. 오늘은 그냥 선남선녀의 평온함을 즐겨보자. 세사에 시달린 번뇌에서 해방되는 것 또한 범부의 즐거움 아니겠나. 그것이 비록 일시(一時)일지라도.   

 

겨울 풍경 - Ciels d'hiver-1-Andre ....m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