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가 아니라‘지금’
2026.03.28 21:31
1주일 전에 춘분이 지나고, 울안의 매화나무에는 꽃망울이 맺혔다. 목하 목련도 개화를 준비 중이다. 두 꽃 모두 서울은 이미 핀 곳이 많지만, 우거(寓居)가 있는 촌 고을은 서울보다 기온이 3-4도 정도 낮아 아직 안 핀 것이다.
이곳이 분명 서울보다 남쪽임에도 이처럼 기온이 낮은 것은, 아니 서울이 이곳보다 북쪽임에도 기온이 높은 것은, 열기를 뿜어내는 자동차, 건물, 그리고 사람들의 많고 적음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리라.
빌딩이 숲을 이루고 자동차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처(大處)와 산과 들과 내(川)가 대부분인 벽촌(僻村)은 다를 수밖에 없고, 그게 오히려 당연한 이치다.


그나저나 하루 중 최저기온과 최고기온의 온도차가 15도 내외가 될 정도로 크다 보니 촌노(村老)의 입장에서는 컨디션 조절이 만만치 않다. 다소 덥다고 느껴질 정도의 낮 기온과 달리 아침 기온만 놓고 보면 아직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라고 노래하기엔 다소 이른 감이 있다.
그래도 옷깃을 여미고 나선 금당천의 뚝방길에는 봄의 전령인 야생화들이 어김없이 촌부를 반긴다. 말이 없어 언뜻 무심한 듯 보이지만, 꼭 말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냥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봄소식을 전하고 받으면 된다. 그런데 그 꽃이 전하는 봄소식을 장삼이사(張三李四) 과연 누구나 다 받고 즐길 수 있을까.

목하 아무리 ‘백세시대’라고 하지만, 실제로 백세를 사는 이 그 얼마나 될 것이며, 설사 백세를 산다고 한들, 꽃이 전하는 봄소식에 바로 젖어 들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오히려 바삐 돌아가는 삶으로 인해 봄꽃 향기에 취할 여유가 ‘나중에’로 넘겨지는 게 다반사 아닐까.
여기서 옛 시 한 수를 소환해 본다.
一年始有一年春(일년시유일년춘)
百歲曾無百歲人(백세증무백세인)
能向花前幾回醉(능향화전기회취)
十千沽酒莫辭貧(십천고주막사빈)
한 해에 봄은 단 한 번뿐이고
백 년 인생에 백세를 사는 이 드무니
꽃 앞에서 몇 번이나 취해볼 수 있을거나
가진 돈 다 들여 술을 살지언정 가난 핑계는 하지 마소
최민동(崔敏童)이라는 당나라 시인의 시다.
시인은 말한다.
봄은 일년(一年)에 한 번밖에 안 오고, 말이 좋아 백 년 인생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사는 이 드문지라, 사람이 살면서 봄꽃 향기가 만발한 곳에 자리 잡고 실컷 취해볼 기회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니 가진 게 넉넉하지 않아도 핑계 대지 말고 이 봄을 즐기시구려.
시인은 언뜻 술값의 넉넉하지 못함을 핑계 대지 말라고 한 것 같지만, 실은 우리의 삶에 봄꽃의 향기를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나중에’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즐기겠다고 하지 말고, ‘지금’ 즐길 줄 아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라는 것이다. 봄꽃이 유한(有限)한 우리의 인생을 마냥 기다려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필칭(言必稱) ‘카르페디엠(Carpe diem)’ 아니던가.
유럽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4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판국에, 중동에서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상대로 벌이는 전쟁이 한창이다. 자칫 제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할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다. 그로 인해 세계 곳곳에서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는 소식이 연일 들려온다.
우리나라라고 예외일 수 없으니 석유 최고가격제가 시행되고, 25조 원 규모의 추경이 논의되고 있다. 주식시장도 어지러울 정도로 요동을 치고 있다. 이쯤 되면 아무리 용한 점장이라 하더라도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마당에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야말로 비상시국에 치러지는 선거인데, 후보자 공천을 앞두고 내심 표정 관리를 하는 것으로 보이는(잠시 수면 아래로 들어간 듯한 내부의 권력투쟁은 차치하고) 여당과는 달리 제1야당의 모습은 가히 가관이라고 할 만하다.
무릇 정치의 마당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은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최우선의 덕목으로 삼아야 하거늘, 이는 남의 나라 이야기인 양 제쳐두고 당리당략(黨利黨略)에 몰두하는 모습들도 식상(食傷)할 정도로 너무 많이 보아 꼴불견인데, 그것도 모자라 이젠 아예 사리사략(私利私略)만 쫓아 지리멸렬(支離滅裂)하는 행태라니.
위정자(僞政者)라고 불러야 할지 정상배(政商輩)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 그들에게, 지금 뒤로 한 발짝 물러서서 봄꽃을 바라보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라고, 그래서 그 꽃이 전하는 진지한 봄소식의 경고를 지금 깊이 새겨들으라고 한다면 연목구어(緣木求魚)이려나.
부드럽고 다정한 느낌 - Douce tendresse-....mp3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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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sy
2026.03.28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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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거사
2026.03.29 08:49
마땅히 즐겨야지요.
꽃 꺾어 잔 수 세며 무진무진 드세요.
그러니 빈 동이 앞에 놓고 달을 대하지는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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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텃골
2026.03.29 08:13
티비 채널은 돌리면 되는데
아침 신문은 펼치다 보면 속터지는 제목들..
대충 넘기다가 집에 던집니다.
옛날엔 신문이 오면 아침 내내 꼼꼼이 읽던 신문인데..
봄향기에 취하며 살자는 즤런 시 반갑고 반갑습니다.
맞아여.
어제도 봄. 오늘 도 봄. 내일도 봄입니다.
금당천 봄은 글과 사진으로
태안의 봄은 괭이와 호미로 맞을 생각입니다.
올핸 요 봄뇬들이랑 질펀하게 놀아 볼 생각입니다. -
우민거사
2026.03.29 08:52
실컷 즐기세요.
즐기다 지치면 한숨 자고 나서 다시 즐기세요~~^^
오늘의 청춘이 내일의 백발로 변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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