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슬을 저마다 하면
2026.05.01 13:00
1
계절의 여왕이라고도 하고 천중지가절(天中之佳節)이라고도 하는 5월이 시작되었다. 열흘 전(4월 20일)에 곡우(穀雨)가 지나고 나흘 후(5월 5일)면 입하(立夏)이다.
이런 절기로 보자면 본래 봄이 한창이어야 하건만, 일교차가 심한 변덕스런 날씨가 계속되어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하고 한낮에는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날이 많아 지금이 봄인지 여름인지 헷갈린다.
그러고 보니 푸른 오월이 푸른 사월로 바뀐 것이 이미 새삼스러운 일이 아닌 마당이라, 목하 새벽에 걷는 우면산 숲길은 그야말로 녹음방초승화시(綠陰芳草勝花時)임을 피부로 느끼게 한다.

그런가 하면 금당천변 우거(寓居)의 문밖으로 나서면 모내기 준비를 위해 트랙터로 논을 갈고 써래질을 하는 농부의 바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촌부가 어릴 적에는 써래질을 위해 목에 멍에를 얹은 소가 쟁기를 끌고 갔지만 이제는 그 일을 트랙터가 대신한다.
그래서 쟁기 끄는 소의 모습은 옛 그림이나 사진에서나 볼 수 있고, 대부분의 농가에서 키우던 소는 자취를 감추었다.
아쉬운 마음에 그나마 소를 볼 수 있는 목장을 찾아가도 농경용의 일소(=역우. 役牛)는 없고 고기소(=육용우. 肉用牛)나 젖소만 볼 수 있을 뿐이다.


2
이처럼 기후의 변화에 따라 4월과 5월의 지위가 바뀌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소(牛)의 역할이 달라지듯이, 우리네 삶도 시간의 경과와 능력의 부침에 따라 지위와 역할이 바뀌게 마련이다.
그 결과 어제까지는 적절했던 자리가 오늘은 부적절한 것으로 바뀔 수 있는 게 세상 이치이고, 뭇사람들은 그 변한 상황에 맞춰 순응하고 따를 것이 자연스레 요구된다.
그런데 그 변화된 환경에의 순응을 거부하면서 이제는 더 이상 자기 분에 걸맞지 않게 된 자리를 계속 탐한다면 이는 실로 어리석고 위험한 일이다. 세상에는 해야 할 일도 많지만, 해서는 안 될 일도 많은 법이다. 특히 그 해서는 안 될 일이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일찍이 주역(周易)에서 갈파한 말이 있다. 즉,
“德微而位尊(덕미이위존)하고, 智小而謀大(지소이모대)하며, 力小而任重(역소이임중)아면, 鮮不及矣(선불급의)라”는 것이다.
이는 주역의 계사전 하편(繫辭傳 下篇)에 나오는 말로, ‘덕이 없는데 지위는 높고, 지혜가 적은데 도모하는 일은 크고, 역량이 부족한데 책임은 무거우면, 화(禍)가 미치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는 뜻이다.
세상사에는 해서는 안 될 말이 있고, 들어서는 안 될 이야기가 있으며, 보아서는 안 될 일이 있고, 올라가서는 안 될 자리가 있다. 요컨대 한마디로 ‘해서는 안 될 일’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덕도 없고 지혜도 없고 힘도 없는 사람이 자신의 분수에 넘치는 큰 일을 도모하게 되면 반드시 화를 입는다는 것을 주역의 위 글은 엄중히 경고한다.
더 나쁜 것은 분수를 모르고 과욕을 부리는 사람이 자기 혼자 그로 인한 화를 입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속한 집단, 그 주위의 사람들에게까지 재앙에 가까운 화를 끼치는 일이다.
일례로, 조선시대 연산군은 왕위에서 쫓겨나기 전까지 수많은 선비들의 목숨을 빼앗았고, 고대 중국의 조고(趙高)는 어렵사리 중원을 통일한 진(秦)나라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3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지난 4월 23일에 다가오는 지방선거(6월 3일 실시 예정)에서 대구시장에 출마하려던 뜻을 접으면서 “덕미이위존(德微而位尊)하고 지소이모대(智小而謀大)면 무화자선의(無禍者鮮矣)”라고 한 말이 한동안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 나온 말(본래는 위에서 본 주역에 나온 글이 원문이다)을 인용하여, 제1야당인 ‘국민의힘’의 대표에게 대표직에서 그만 물러나라고 한 것이다.
한 여론조사기관에서 4월 20일부터 2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5명을 대상으로 정당별 지지율을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제1야당인 국민의힘 지지율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48%에 비하여 1/3도 안 되는 15%에 머문 것으로 나타났다. 이쯤 되면 제1야당의 존재 의미가 희미해진다. 시기별로 당명이야 어떻든 간에 명색이 제1야당인 정당의 지지율이 이렇게 추락한 적이 또 있었던가 싶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뜬금없는 계엄 선포와 그로 인한 탄핵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당의 당대표의 그간의 말과 행동에 민심과 동떨어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던 것 또한 지지율 추락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많은 언론매체에서 지적을 하고 있었기에, 주호영 부의장이 그런 말을 한 것으로 보인다. 오죽하면 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이 당대표가 자기 지역을 방문하는 것을 꺼리고 독자적인 선거대책위원회를 꾸리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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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야당의 추락은 그 자체로는 어떤 이유에서건 자신들의 업보이지만, 문제는 견제 세력의 부재가 초래할 후유증이다.
지난 4월 28일에 영국 국왕 찰스 3세가 미국 독립 250주년을 기념하여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하면서 강조했듯이, 민주주의의 요체는 ‘견제와 균형(the principle that executive power is subject to checks and balances)’이다. 권력을 쥔 정부 여당을 견제할 수 있는 야당이 없으면 권력은 그 속성상 균형감을 잃고 독주(심하면 폭주)하기 마련이다. 건전하고 힘이 있는 야당이 존재해야 정부 여당도 긴장하고 권력을 남용하지 않는 법이다.
자기 진영 내에서조차 문명국가의 수치라는 소리를 들은 법왜곡죄를 만들고, 재판소원을 인정하여 사실상 4심재판제를 도입하고, 현 대통령의 임기 내에 대법관의 수를 두 배로 늘리는 법들을 제정하고, 검찰권의 남용을 구실로 검사의 수사권을 박탈하면서 그보다 권한이 더 센 특검을 연이어 도입하는 등 정부 여당이 ‘법(法)’의 이름 아래 조자룡이 헌 칼 쓰듯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입법을 한 데 대하여 제1야당의 무기력이 일조했다고 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정부 여당이 아무리 무리수를 두어가며 독주를 해도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하는 반면, 제1야당의 지지율은 곤두박질을 치는 이유를 그 당의 명색이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지 궁금하다. 그들에게 덕(德)을 갖출 것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智小而謀大(지소이모대)하며, 力小而任重(역소이임중)이면, 鮮不及矣(선불급의)”라는 주역의 글귀를 새삼 들려주고 싶다면 일장춘몽(一場春夢)이려나.
그나저나 지난 정부에서 구성된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에서 AI·데이터분과위원장과 초거대공공AI태스크포스 팀장이라는 중책을 맡았고, 현 정부에서도 청와대 AI미래기획수석의 직책에 있었던 사람이 ‘주권 AI’의 판만 벌여놓고 고작 열 달 만에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것은 또 뭔가. 이제 49세의 한창 나이로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자리를 버리고 의석수가 161석이나 되는 거대 여당의 한 모퉁이에 이름을 올린들 그게 국익에 얼마나 기여를 하며, 본인의 삶에조차 무슨 도움이 될까.
입만 열면 국민을 위한다는 자칭 위정자들이 스스로의 분수를 알아(知分) 분수를 지키며(守分) 분수에 만족(安分)함으로써, 천명(天命)이 정한 바에 따라 순응하고 하늘의 뜻을 받드는 ‘守分安命 順時聽天(수분안명 순시청천)’의 지혜와 자세를 보여준다면 뭇 백성의 입장에서 얼마나 반가운 일일까.
조선시대의 문인 김창업(金昌業, 1658-1722)이 지은 아래 시조가 새삼 피부에 와 닿는다.
벼슬을 저마다 하면 농부 할 이 뉘 있으며
의원이 병 고치면 북망산이 저러하랴
아이야 잔 가득 부어라 내 뜻대로 하리라.
15-슈베르트 - 미완성 교향곡 1악장 알레그로 모데라토.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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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선충은 소나무 에이즈로 일본처럼 우리나라도 소나무 멸종 예고를 산림 학계에서 오래전부텨 예견 해 대책 강구를 요구했음에도 산에 소나무 조림을 해 왔지여.
심지어 지금도 가로수나 정원수로 소나무 심깅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기도 하죠.
소나무가 국민들의 인기 수종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무의 생태나 쓰임은 완전히 배제한 상태로.
머잖아 소나무가 죽어 나가고 가로수 관리비가 감당하기 힘들텐데 요즘도 보니 가로수로 소나무를 심더군여.
예견되고 검증된 것 조차 무시하고 밀어 부치는 위정자들의 무지는 곧 공멸이라는 결과 뻔 함에도 그리함은 탐욕인지 무지인지..
"너 죽고 나 살자"는 그래도 하나는 살지만
"너죽고 나 죽자"는 정말 할말을 잃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