弗慮胡獲 弗爲胡成(불려호획 불위호성)
2026.05.30 22:28
내일이면 계절의 여왕 5월이 막을 내리고, 1주일 후(6월 6일)면 ‘보리 베기’를 한다는 망종(芒種)이다. 오늘 29도였고 내일은 30도가 예상되는 서울의 낮 최고기온이 말해주듯, 바야흐로 봄이 물러가고 명실상부하게 여름이 시작되는 것이다.
금당천도 예외가 아니어서 사위(四圍)가 온통 녹음이 짙어진 가운데 진즉 모내기를 마친 논들의 벼가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다.

그런데 올여름에는 북태평양과 북인도양의 해수면 온도가 올라가고 북태평양고기압이 강하게 발달하여 폭염과 폭우가 잦아질 것이라는 기상 전망이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현실에 더해지다 보니, 아무래도 힘든 여름을 보낼 것 같아 흥이 안 나고 맥이 풀린다.
목하 역대급 호황을 보이는 반도체 산업 덕분에 제조업 경기지수가 상승하고 있다지만, 그 온기가 산업 전반에 퍼지는 것이 아니라 일부에 국한된 모습이다. 어제(5월 29일) 증권시장의 코스피 지수가 8,476까지 올랐으나, 이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등 몇몇 종목의 급등 덕분이고, 정작 코스피 10종목 중 9종목은 하락하였다.
삼성전자 노조가 ‘파업’이라는 무기로 회사를 겁박하여 1인당 6억 원의 성과급 약속을 받아내 환호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그들만의 잔치일 뿐, 나날이 삶이 팍팍해져 가고 있는 국민들이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지난 수요일(5월 27일) 오후 판소리 수업을 마치고 저녁 7시 무렵에 식사를 위해 인근에 있는 왕십리 센트라스 아파트단지의 식당가를 찾아갔다가 순간적으로 발걸음이 멈칫했다.
센트라스 아파트는 성동구 뉴타운의 대표적인 대규모 아파트단지로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과 직접 연결되어 있어 접근성이 뛰어난 까닭에, 그동안 지역 주민들뿐만 아니라 인근 직장인들에게도 인기가 높았던 곳인데, 그 많던 각종 식당들이 다 어디 가고 겨우 두 집만 영업을 하고 있었다. 그나마도 좌석의 반도 못 채운 상태였다.
이런 현상이 어디 이곳뿐이랴. 도심의 핵심 상권인 종로2가나 강남대로를 걷다 보면 텅 빈 상가에 임대 쪽지만 달랑 붙어있는 점포들이 수두룩하게 눈에 들어온다. 오후 8시만 되어도 웬만해서는 저녁 식사를 할 만한 식당을 찾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6·3 지방선거의 열기가 한층 달아오르고 있다. 촌부도 오늘 금당천에 내려오기 전에 사전 투표를 했다. 선거공보를 보면, 선거에 나선 후보자들은 하나같이 자기가 당선되면 국민의 삶을 금방 윤택하게 하여 줄 것 같은 공약을 내세운다. 4년 전에도 그랬고, 8년 전에도 그랬고, 그전에도 그랬다.
그런데 그들이 과연 얼마나 그 말을 지켰던가.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그친 게 한두 번이었던가. 하긴 국리민복을 살피기보다는 당리당략에 매몰되는 게 다반사인 위정자들에게 무슨 큰 기대를 하랴. 작금의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어려운 삶이 오로지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극단적인 진영논리에 젖어있는 그들의 눈에 들어오기나 할까.
지금 우리나라 경제 상황은, 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자영업 폐업률이 올라가고, 중소기업들은 경영난에 쫓기고, 1달러당 1,500원대 환율이 일상화되어 대외 구매력은 17년 만에 최저로 쪼그라들고, 비싸진 금리는 2,000조 원 빚더미의 가계를 신용 위기로 내몰고, 먹고 쓰는 생활 물가가 무섭게 뛰고, 집값과 전·월세는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
이런 어려운 판국에 청와대 정책실장이라는 막중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 ‘지금의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은 우리나라 경제가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성공의 비용’이라고 태연히 말하여 국민의 염장을 지를 수 있는 것도, 결국은 진영논리에 매몰되어 국민을 가붕개로 취급하는 사고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아닐는지.
그런 위정자들에게 들려줄 말이 없을까 하여 실없이 고전을 하나 펼쳐 든다.
서경(書經)(=상서 商書) 태갑하(太甲下)에 “弗慮胡獲 弗爲胡成(불려호획, 불위호성)”라는 말이 나온다. “생각하지 않으면 어찌 얻으며, 행하지 않으면 어찌 이루겠는가” 하는 뜻이다,
이는 고대 중국 은나라(=상나라)의 건국공신이자 재상이었던 이윤(伊尹)이 왕인 태갑(太甲)에 올바른 왕의 길을 고(誥)하면서 한 말의 일부이다.

기원전 16세기경에 이윤이 왕에게 거듭 고한(申誥) 말이 그로부터 3,600여 년이 흐른 지금에도 절절하게 읽히기에 그 주요 부분을 옮겨본다.
아아, 하늘은 누구에게나 사사로운 정을 두지 않으니, 오직 공경을 다하는 자만 가까이한다. 백성도 언제나 한결같이 누구를 따르는 것이 아니니, 오직 어진 이를 마음에 둔다(嗚呼! 惟天無親 克敬惟親 民罔常懷 懷于有仁).
하늘이 맡긴 왕의 자리는 참으로 어렵다. 덕이 있으면 나라가 다스려지고, 덕이 없으면 나라가 어지러워진다. 바른 정치의 길과 함께하면 흥하고, 혼란의 길과 함께하면 망할 수밖에 없다(天位艱哉!德惟治 否德亂 與治同道 罔不興 與亂同事 罔不亡).
높은 곳에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데서부터 시작하고, 먼 곳을 가려면 반드시 가까운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若升高 必自下 若陟遐 必自遐).
백성의 일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그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왕의 자리를 편안하게 여기지 말라. 그 자리는 참으로 위태롭다(無輕民事 惟難 無安厥位 惟危).
끝을 잘 맺고자 한다면 시작할 때부터 삼가야 한다. 마음에 거슬리는 말을 듣거든 그것이 도리에 맞는지 살피고, 뜻에 맞는 말을 듣거든 그것이 도리에 어긋나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慎終于始 有言逆于汝心 必求諸道 有言遜于汝志 必求諸非道).
아아, 깊이 생각하지 않고서 어찌 얻겠으며, 행하지 않고서 어찌 이루겠는가. 군주 한 사람이 크게 훌륭하면 온 나라가 바르게 선다. 그러니 임금은 번지르르한 말로 정사를 어지럽히지 말고, 신하는 총애와 이익만 믿고 기존의 공 위에 안주하지 말라. 그리하면 나라가 오래도록 복을 누릴 것이다(嗚呼!弗慮胡獲 弗為胡成 一人元良 萬邦以貞 君罔以辯言亂舊政 臣罔以寵利居成功 邦其永孚于休).
요컨대, 이윤은 태갑에게, 천명도 민심도 다 덕 있는 사람에게 돌아가니, 군주는 모름지기 현란한 말재주로 백성을 현혹하지 말고, 시종일관 스스로를 경계하고, 듣기 싫은 말도 받아들이며, 반드시 깊이 숙고한 뒤 실행할 것을 강조한다.
기원전 16세기경 왕이 위치했던 자리에 작금의 대통령이나 각급 자치단체장 등 위정자들을 대치시키면, 놀랍게도 3,600년 전의 말이 바로 지금의 말처럼 생생하다. 그것도 정곡을 찌르는 비수 같은 말로 다가온다. 이미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위정자든, 앞으로 위정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이든, 모두 깊이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여야 격전지의 시장(市場)을 전·현직 대통령들이 순회하는 보기 드문 모습이 언론의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그런데 선거에 엄정중립을 지켜야 하는 현직 대통령의 방문은 ‘일상적인 업무수행의 일환’이라고 강변하면서, 정작 선거 중립으로부터 자유로운 전직 대통령의 방문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어디를 돌아다니냐’고 비난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내로남불이다.
아무리 치열한 선거판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지켜야 할 것은 지키는 게 도리가 아닐는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지 않은가. 선거판의 자칭 위정자들이야말로 깊이 생각하고 행동할 일이다.
밤이 깊어 창문을 여니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반긴다(내일이 사월 보름이다). 그 보름달에 보조를 맞추기라도 하려는 것일까, 개구리 울음소리가 지축을 흔든다.
보름달에 눈이 멀고 개구리 울음소리에 귀가 멀면 부설거사(浮雪居士)처럼 분별시비가 없어지려나[目無所見無分別(목무소견무분별) 耳聽無聲絶是非(이청무성절시비) 分別是非都放下(분별시비도방하)].

댓글 4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 » |
弗慮胡獲 弗爲胡成(불려호획 불위호성)
[4] | 우민거사 | 2026.05.30 | 112 |
| 373 |
벼슬을 저마다 하면
[4] | 우민거사 | 2026.05.01 | 141 |
| 372 |
‘나중에’가 아니라‘지금’
[4] | 우민거사 | 2026.03.28 | 104 |
| 371 |
영원한 롤모델
[4] | 우민거사 | 2026.02.15 | 118 |
| 370 |
멈출 데 멈추고 기다릴 때 기다려야
[4] | 우민거사 | 2026.02.01 | 144 |
| 369 |
만리 안개 길을 막아
[4] | 우민거사 | 2025.12.20 | 152 |
| 368 |
여의강(汝矣江)에 배를 대다
[6] | 우민거사 | 2025.12.06 | 132 |
| 367 |
슬픔은 노래가 되고
[6] | 우민거사 | 2025.11.26 | 185 |
| 366 |
소설(小雪)과 억새
[6] | 우민거사 | 2025.11.22 | 180 |
| 365 |
2025년 ALB Korea Law Awards 축사
| 우민거사 | 2025.11.08 | 1681 |










"요즘 학교에서 가르칠 것이 없다"고여.
"요즘은 사기치고 전과자가 돼야 큰소리 치고
성공하는 시대다 보니
정직하고 착하게 살라고 할 수도 없고"
"놀아야 대우 받는 세상이니
열심히 노력하라 할 수도 없다"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