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역쾌재(不亦快哉)

2026.07.25 21:12

우민거사 조회 수:125

 

    그제가 대서(大暑)였고 오늘이 중복(中伏)이다. 월초부터 시작하여 비가 연일 내리던 장마 기간에는 그나마 낮 최고기온이 30도 아래에서 머물더니, 그 장마가 끝나가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수은주가 32도를 오르내린다.

 

    얼마 전에 다녀온 몽골의 고비사막은 최고기온이 40도 가까이 되어도 습기가 거의 없어 더위가 크게 힘들지 않았는데, 우리나라의 여름 더위는 습도가 매우 높아 말 그대로 '찜통더위'인지라 서울의 32도가 고비사막의 40도보다 더 덥게 느껴진다.

 

    대서(大暑)나 중복(中伏)은 그 더위의 한가운데 있으니, 이때가 되면 으레 그러려니 하면서도 더위가 얼른 지나가 시원한 바람이 불면 좋겠다는 극히 소박하면서도 이기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의 나약한 심성을 어쩌겠는가.

 

    오늘 찌는 더위에 원각사 무료급식소에 가면서 내심 걱정을 했다. 더위가 극성을 부리는 데다 여름 휴가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7월 말의 주말이니 봉사자가 적으면 어쩌나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급식소에 도착한 순간 괜한 걱정을 했다는 것을 알고 안도했다. 봉사자들이 평소보다 오히려 더 오신 것이다. 오늘이 당번인 서초반야회의 회원들뿐만 아니라 다른 자원봉사자들도 많이 오셨다.

    그래, 세상은 역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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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다가 더욱 감사할 일이 있다.

 

    본래는 오늘이 중복이라 북촌에 있는 유명한 삼계탕집인 백년토종삼계탕의 이성기 대표님이 삼계탕 300인분을 제공해 주시기로 되어 있었다(정말 고맙게도 복날마다 삼계탕 300인분을 보내 주시고, 필요한 때는 복날이 아니어도 보내 주신다).

    그런데 오늘 칠순을 맞이한 독지가 한 분이 칠순 잔치를 하는 대신 그 비용을 원각사 무료급식소에 기증하여 음식을 장만하게 해 주셨다. 그에 더하여 이분은 당신의 지인분들과 함께 오셔서 설거지까지 도맡아 해 주셨다.

     전후 사정을 들은 백년토종삼계탕의 이성기 대표님은 흔쾌히 다음 주 화요일에 삼계탕 300인분을 보내 주시기로 했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두 분의 보살행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등불이 아닐는지.

 

    여기서 다산(茶山) 선생의 불역쾌재행(不亦快哉行) 연작시 20수 중 제1수를 소환해 본다.

 

   跨月蒸淋積穢氛(과월증림적예분)

   四肢無力度朝曛(사지무력도조훈)

   新秋碧落澄寥廓(신추벽락징요곽)

   端軒都無一點雲(단헌도무일점운)

   不亦快哉(불역쾌재)

 

   한 달 넘게 찌는 장마에 퀴퀴한 기운 쌓여

   팔다리 나른하게 아침저녁 보냈는데

   초가을 푸른 하늘 툭 터져 해맑으니

   끝까지 바라보아도 구름 한 점 없구나.

   이 또한 유쾌하지 아니한가

 

    위 시의 3행과 4행을 두 분의 보살행에 맞게 바꿔본다.

 

   跨月蒸淋積穢氛(과월증림적예분)

   四肢無力度朝曛(사지무력도조훈)

   施粥菩薩行常續(시죽보살행상속)

   苦世光明照萬方(고세광명조만방)

   不亦快哉(불역쾌재)

 

   한 달 넘게 찌는 장마에 퀴퀴한 기운 쌓여

   팔다리 나른하게 아침저녁 보냈는데

   무료급식소에 보살행이 이어지니

   힘든 세상에 광명의 빛이 비추누나

   이 또한 유쾌하지 아니한가

 

   찌는 더위와 긴 장마에 얼마나 유쾌한 소식인가. 

 

    급식 봉사를 마치고 금강천에 내려오니 들녘의 벼가 패어 익어가고 있다. 사람은 더워~ 더워~” 하며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하지만, 들녘의 벼는 그 더위가 마냥 고마울 따름이다. "좋아~ 좋아~"하고 소리치는 벼의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벼의 입장에서는 이 시기의 더위야말로 성장과 결실을 위해 절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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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고 보면 무더위에 벼가 잘 익어야 사람이 나중에 추수를 해서 밥을 먹을 테니, 더위를 무턱대고 싫어할 일이 아니다. 세상일이라는 게 극단에 치우치면 될 일도 안 되는 법이다.

 

    목하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기 위하여 검찰의 수사권을 박탈하면서 검찰에 보완수사권을 남겨놓을 것이냐 여부를 놓고 집권 여당 내에서 깊이 논의하나 싶더니, 결국 하나도 남겨둘 수 없다는 강경파의 목소리가 득세하여 그 방향으로 입법이 이루어질 모양이다. 이에 법무부장관이 사의를 표명하는 지경까지 왔다.

 

    광주의 여고생을 살해한 장윤기 사건에서 보듯이, 검사의 보완수사권이 없으면 범죄 피해자 보호에 구멍이 뚫린다는 각계의 지적이 계속 이어져 왔고, 국민 여론 또한 검사의 보완수사권을 존치하여야 한다는 쪽이 다수이건만(714~16일 한국갤럽 조사 결과 61%가 존치에 찬성), 여당은 오불관언이다.

 

    곧 열릴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되기 위해서는 보완수사권 폐지에 찬성하는 편이 득표에 유리하다는 계산이 저변에 깔려 있다는 일각의 분석이 정말 맞다면 경악할 일이다.  도대체 국민을 범죄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정당의 대표 자리와 맞바꿀 성질의 것이냐는 어느 시사평론가의 촌철살인이 귓가를 맴돈다. 대붕(大鵬)이 노니는 곳에 가붕개에 불과한 연작(燕雀)의 안위 따위는 끼어들 자리가 없다는 것일까. 

   그게 진실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찌는 더위가 싫다고 여름을 없애면, 벼는 어떻게 재배하고 밥은 어떻게 먹으려나. 서양인도 아닌데 한국인이 쌀로 만든 밥 대신 밀로 만든 빵만 먹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클래식1.m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