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당천의 한가위
2026.09.29 22:25
9월 23일이 추분이고, 9월 25일이 추석이었다.
가을을 대표하는 절기이자 민속 명절인 추분과 추석이 절묘하게 이틀 사이로 이어졌고, 덕분에 사위(四圍)에 무르익은 가을 정취를 한껏 즐길 수 있었다. 이에는 나흘간 이어진 추석 연휴가 한몫을 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각각 12시간으로 같다는 날짜가 교과서에 나오는 추분이 아니라 그로부터 사흘 뒤인 9월 26일이었다는 것이다(일출 오전 6시 20분. 일몰 오후 6시 20분).
그런데 확인해 보니 묘하게도 지난해에도 9월 26일에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았다(일출 오전 6시 23분. 일몰 오후 6시 23분). 내년에도 그러려나? 만일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된다면 추분의 날짜를 바꾸거나, 아니면 추분의 설명을 바꾸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가 하면 한가위 보름달로 대변되는 추석날에는 정작 오후에 비가 오고 흐려 보름달을 못 보고, 하루가 지나서야 쟁반같이 둥근 달을 볼 수 있었다. 그 달이 빛나는 모습은 말 그대로 ‘秋月揚明輝(추월양명휘)’였고, '동산에 달 오르니 긔 더욱 반갑고야'였다.
아무튼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AI의 시대가 도래한들 변화무쌍한 천체의 조화를 인간이 어찌 다 알랴.

추석 당일에는 사당에서 차례 지내랴, 산소에 다녀오랴, 바쁜 일정을 보낸 후 오후에 오대산 월정사를 찾았다. 화창한 가을날씨에 맞는 연휴라서인지 경내가 사람들로 붐볐다.
22년 6개월의 긴 기간 동안 주지 소임을 맡아보다가 지난 9월 8일에 마침내 후임 인광스님에게 주지직을 인계하고 회주로 물러앉으신 정념스님이 반갑게 맞아 주셨다. 언제 뵈어도 후덕하고 인자한 인상의 스님은 천상 산중 승려 그 자체이시다.

[사당]

[월정사에서]
추석 다음날에는 신륵사 앞 여주강 조포나루에서 모터보트와 황포돛배를 타는 뱃놀이를 했다. 모터보트의 빠른 속도에 손주들이 처음에는 겁을 먹고 탈까 말까 망설이더니, 막상 타고 나니까 시원하게 물줄기를 가르며 달리는 속도감에 매료되어 내리는 것을 아쉬워했다.
그래서 모터보트에서 내리자마자 곧이어서 주저 없이 황포돛배에 올라탔다. 용감하게 뱃머리에 혼자 앉아서 기념사진을 찍는 손주들의 모습에서 그들이 품을 떠나갈 날이 멀지 않았음을 느낀다. 시간은 가고 세월은 흐르고 있다.




[황포돛배]
여주강의 황포돛배는 조선시대의 주요 운송수단이었던 황포돛배를 재현한 유람선이다. 여주는 조선시대 4대 나루 중 이포나루와 조포나루의 두 곳이 있을 정도로 번화했던 곳이다(4대 나루 중 나머지 두 나루는 마포나루와 광나루).
유람선을 타고 강의 위아래로 오르내리노라면, 경치가 수려해 여강(驪江)이라 불릴 정도로 빼어난 경관을 감상하면서 신륵사와 주변 볼거리에 관한 간단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이 배는 2003년 4월부터 운항을 시작하였는데, 주말마다 여주의 고향 생가를 오가면서도 그로부터 23년이 지난 이제서야 그 배를 처음 탔으니 어지간히도 무심했다는 자책감이 든다.
황포돛배에서 내리자 때마침 철새들이 떼를 지어 비상하며 청명한 가을 하늘에 수를 놓았다. 본래 금당천에서는 가을부터 초겨울까지 기러기와 오리들이 하늘을 무리 지어 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날의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새들의 군무는 보기 드문 정경이었다. 유명한 천수만의 철새들을 연상케 하였다.
한양에서 조상님들을 찾아온 어린 손주들이 기특하여 새들이 일부러 멋진 연출을 한 것은 아닐까. 꿈보다 해몽이 좋다고 아전인수(我田引水)격의 해석을 한다고 해서 탓할 건 없으리라.

[철새들의 군무]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배가 고파 파스타가 먹고 싶다는 손자들을 데리고 민생고를 해결하러 간 곳은 “미낙”이라는 이태리식당이다. 며느리가 인터넷 검색을 하여 처음 찾아간 곳인데, 여주는 물론 서울 근교의 드라이브 코스로도 널리 알려진 곳이라고 하니,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니다.
이 식당은 유럽식의 넓고 아름다운 야외 정원이 있는 곳으로, 작은 계곡과 폭포가 있는 오솔길, 연못, 원형 무대 등이 갖춰져 있다. 실내에서는 높은 층고와 통창을 통해 바깥 정원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고, 좌석 간격이 넓어 호젓한 식사가 가능하다. 피자와 파스타가 일품인데, 가격도 합리적(저렴?)이다.



[미낙식당]
뱃놀이도 하고, 맛있는 식사와 산책도 하고, 한껏 여유를 부리다 연휴에 먹고 노느라 쌓인 피로(?)를 풀 겸 귀갓길에 썬밸리호텔의 사우나에 들렀다.
작은 손자는 할머니를 따라 여탕으로, 큰 손자는 촌부를 따라 남탕으로, 졸지에 이산가족이 되었다. 작은 손자도 한 달만 더 지나면 더 이상 할머니를 따라갈 수 없다.
할머니는 손자들이 커가는 것을 보며 즐거워하면서도 그들이 품 안의 자식에서 벗어나게 되는 게 서운한 모양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금당천에서는 이렇게 한가위 연휴가 연휴답게 지나가고 있었는데, 한양에서는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을 둘러싸고 위정자(僞政者)들이 험한 말들을 쏟아냈다.
누구는 대법원장을 “조희대씨”라고 부르며 “사퇴하라”고 하고, 누구는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 임명권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라고 하고, 누구는 “제청을 철회하고 대법원장 자리에서 즉각 물러나라”고 하고, 누구는 “대법관 제청권은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의 임명권을 올바르게 행사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권한”이라고 한다.
삼권분립에 관한 그들의 그야말로 아전인수식 생각과 언어들을 보노라면,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의 부국이 되었다는 말이 정말 맞나 싶다.
"30년 정치권을 취재하면서 보수·진보 어느 정권에서도 보지 못한 모습이다. 40년 전 군부정권, 70년 전 독재정권도 차마 이러지는 못했다"
고 하는 어느 고참 기자의 일갈을 접하면서, 커지는 몸집을 사고가 정상적으로 따라가지 못해 나라가 기형적인 괴물국가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앞선다. 촌부의 공연한 노파심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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