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수로 산 하나를 통째로 주다(사패산)
2026.10.06 00:01
2026년 9월 19일 사패산을 올랐다.
산행코스는 지하철 1호선 회룡역(3번 출구) → 회룡탐방지원센터 → 회룡사 → 회룡사거리 → 사패능선 →사패산 정상 → 사패능선 → 회룡사거리 → 포대능선 → 망월사 → 원도봉탐방지원센터 → 1호선 망월사역 코스를 택하였다. 총거리는 8.3킬로미터이다.
사패산 등산코스는 여러 개가 있는데, 특히 이 코스가 북한산국립공원 북부 지역의 아름다운 숲과 능선, 고즈넉한 사찰을 한 바퀴 도는 환(環) 종주 성격의 명품 등산로 알려져 있다.
쉬지 않고 걸으면 약 3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촌부 일행은 주위 풍광을 구경하고, 사진 찍고, 쉬면서 간식을 먹고, 절을 둘러보느라 그 두 배 걸렸다.

경기도 의정부시와 양주시 장흥면의 경계에 있는 사패산(賜牌山)은 북한산국립공원의 북쪽 끝자락으로 해발고도가 552m이다. 남쪽의 도봉산과 능선으로 이어진다.
이 산의 이름 사패산은 조선 시대의 역사적 배경에서 유래했다.
조선 시대에는 임금이 왕족이나 공신에게 토지나 산을 하사하는 것을 '사패(賜牌)'라고 하였는바, 선조임금이 여섯째 딸 정휘옹주(貞徽翁主) 유정량(柳廷亮. 후에 도총관을 지냈다)에게 시집보내면서 혼수품으로 이 일대의 산과 토지를 하사(=사패)한 데서 산의 이름이 유래한 것이다. 즉, '임금이 하사한 산'이라는 것이다. 혼수도 이 정도면 정말 대단하다. 가히 왕조시대 답다.
그런가 하면 이 산은 그 생김새가 삿갓이나 갓을 닮았다고 하여 예로부터 ‘갓바위산’ 또는 ‘삿갓산’으로도 불렸다.
이 산은 지리적으로는 삼국시대부터 구축된 보루(=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진지)의 터가 남아 있을 정도로 한양으로 통하는 중요한 군사요충지였기 때문에, 현대에 들어와서도 오랜 기간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었다. 역설적으로 그 덕분에 자연경관이 잘 보존되어 있다.
오전 8시 지하철 1호선 회룡역 3번 출구에서 히말라야 산행 도반들을 만났다. 김용안님이 오랜만에 동참했다.
본래는 이곳이 도보 산행의 출발지인데, 이곳에서부터 회룡탐방지원센터까지는 상가와 주택가를 지나는 까닭에 산행의 의미는 없이 힘과 시간만 허비하는 셈인지라 촌부 일행은 위 구간을 택시로 이동했다. 참고로 회룡역 앞에는 등산객을 기다리는 택시가 많아 타기가 쉽다.

회룡탐방지원센터에서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하였지만(오전 9시), 회룡사까지는 포장도로를 걸었다. 회룡사에 출입하는 스님과 신도들의 차량 출입을 위하여 도로를 포장해 놓은 것이다. 그래도 길옆으로 울창한 숲과 계곡이 이어져 산행 분위기를 크게 해치지는 않는다. 사실 요새는 서울 근교 산에 있는 웬만한 산사는 입구까지 도로를 포장하여 놓기 때문에 이를 각오하고 산에 올라야 한다.
[회룡사]
회룡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하여 20분 정도 걸려 회룡사에 도착했다. 지금은 비구니 도량인 이 절은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681년에 창건한 사찰로, 창건 당시의 본래 이름은 ‘법성사(法性寺)'였다. 그런데 어떻게 용이 돌아온 절이라는 '회룡사(回龍寺)'로 바뀌었을까. 이와 관련해서는 두 가지 전설이 전해져 온다.
그 하나는, 조선을 건국하기 전 무학대사가 이 절에 머물며 이성계의 대업 성취를 위해 정성으로 기도를 올렸고,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여 왕위에 오른 뒤 이 절을 찾아와 무학대사를 만났는바, 이성계가 용(=왕)이 되어 돌아온 절이라 하여 이 절의 이름을 '회룡사'로 바꿨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른바 함흥차사와 관련된 것이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이방원이 일으킨 '왕자의 난' 등 피비린내 나는 권력 다툼에 실망하여 왕위를 내려놓고 고향인 함흥으로 가 칩거했는데, 세월이 한참 흐른 후 태종(이방원)의 거듭된 청과 무학대사의 설득으로 한양으로 돌아오면서 그 길에 이 절에 들렀는바, 이를 기념하여 왕(=용)이 돌아온 절이라는 ’회룡사‘로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느 전설에 의하든 회룡사는 태조 이성계와 뗄 수 없는 역사적 인연이 있는지라 대웅전 안에 태조 이성계의 어진(御眞=임금의 초상화)이 모셔져 있다. 의정부시에서 이성계의 50대 후반의 모습을 고증하여 제작한 것이다.
비록 오랜 세월이 지난 후대에 모셔진 것이긴 하나, 불교를 억제한 유교국가인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사잘의 대웅전에 걸려 있다는 것이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그렇게 세상은 돌고 돈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
회룡사에는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는가 하면, 2000년대 초에는 서울 외곽순환고속도로를 건설하면서 사패산터널을 뚫었는데, 이게 자연환경을 훼손하고 사찰의 수행에 방해가 된다고 회룡사 스님들을 비롯한 승려들의 반대가 심해 공사가 2년 정도 늦어진 일이 있었다. 이 사태는 경부고속철도 건설 당시의 천성산 도롱뇽 사건과 함께 국책사업과 환경운동의 충돌을 어떤 시각으로 볼 것인가 하는 화두를 던져 주었다.
당시의 반대운동의 당부를 떠나, 그로부터 20년이 넘은 현재 회룡사의 수행이 지장을 받고 있다거나 천성산의 도롱뇽이 감소했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고 있다. 사패산터널로 차가 수없이 다니고 천성산터널로 고속철도가 달리고 있는 지금 아니러니하게도 촌부가 찾은 회룡사는 조용하기 짝이 없는 청정도량이었고, 천성산의 도롱뇽은 개체수가 오히려 더 늘었다고 한다. 이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일까.
한편, 회룡사 방향으로 오르다가 회룡사를 200m 앞에 두고 나타나는 삼거리 갈림길(이정표가 있다)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이 길도 사패산 등산로의 하나인데 비교적 인적이 뜸하다)을 따라 500m 올라가면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수도하고 기도했다고 전해지는 아담한 석굴암 암자(암자 이름이 '석굴암'이다)가 나온다.
이 암자는 백범 김구 선생이 상하이로 망명하기 전에 머물며 심신을 달래던 곳이라고도 하는데, 이 암자의; 법당 옆에는 작은 석굴암(암자 이름이 아이라 말 그대로 바위에 굴을 파고 부처님을 모신 전각인 석굴암)이 있다.
그 입구의 바위에는 김구 선생이 해방 후인 1948년에 다시 찾아왔다가 남긴 친필인 ’石窟庵 佛 戊子 仲秋 遊此 白凡 金九(석굴암 불 무자 중추 유차 백범 김구)‘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그 내용인즉, 김구 선생이 1948년(무자년) 가을(중추)에 이곳 석굴암에 놀러왔다는 것이다(촌부는 3주 후에 사패산에 다시 가서 이 글씨를 확인했다).
[석굴암 암자]
[석굴암 입구의 바위에 새겨진 김구 선생의 글씨]
회룡사에 얽힌 전설과 관련하여 회룡사가 위치한 의정부시의 이름에 얽힌 비화도 전해진다.
이성계가 함흥에서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완전히 풀리지 않아 한양의 코 앞인 현재의 의정부 지역에 머물렀다. 이성계가 궁궐로 들어오지 않고 이곳에 머물러 있는지라 국정을 운영해야 할 조정(의정부)의 정승들이 할 수 없이 이곳으로 찾아와 나랏일을 의논했다. 이처럼 ’의정부 정승들이 모여서 국정을 의논하던 곳"이라 하여 이 일대의 지명이 자연스럽게 '의정부'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긴 역사를 지닌 회룡사를 한 바퀴 둘러본 후 사패산 정상을 항해 회룡골을 따라 발걸음을 재촉했다. 1.5 km 떨어진 회룡사거리까지 오르는 길은 상당 부분 계곡을 따라 오르는데 전반적으로 평탄하다. 그래도 명색이 산길인지라 돌계단을 오르기도 하고 쇠파이프 난간을 붙잡고 가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회룡사사거리에 도착하니 오전 10시 30분이다.
이 사거리는 북쪽으로 사패능선이 시작되고 남쪽으로 포대능선이 시작되는 교차점이다. 동쪽으로는 이때까지 올라온 회룡사 방향이고, 서쪽으로는 송추 방면으로 내려간다. 이처럼 사통팔달로 연결되는 사거리 지점인 까닭에 각 방향에서 온 산객들이 숨을 돌리며 다리에 힘을 재충전하느라 붐빈다.
이곳의 이정표에 따르면, 북쪽의 사패산까지는 1.2km, 남쪽의 도봉산 자운봉까지는 2.3km, 동쪽의 회룡사까지는 1.5km, 서쪽의 송추계곡까지는 1.7km이다.
[회룡사거리 이정표]
전술한 대로 이곳에서 북쪽으로 사패능선으로 따라 1.2km를 가면 사패산 정상이다. 그런데 도봉산 방향으로 가려면 사패산 정상까지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단체 등산객들은 일부가 이곳에 남아 배낭 등 짐을 지키고 나머지 사람들만 사패산 정상을 다녀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패선 정상까지는 계속 능선을 따라서 가는 만큼 평지를 걷기도 하고, 작은 봉우리들을 오르내리기도 한다. 회룡골 계곡에서 능선에 다다르기까지와는 달리 전망도 트이고 바람도 이따금 불어 걷기가 좋다. 다만 정상 바로 밑의 암벽길은 난간을 잡고 올라가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옆으로 안전한 돌계단길이 따로 나 있지만, 히말라야를 오르는 용장들이 어찌 계단을 이용하랴.

[사패능선 길]
[사패능선 갈에서 본 사패산 정상 부분]
오전 11시 18분에 사패산 정상에 섰다. 정상은 하나의 거대한 바위로 되어 있어 시야 장애 없이 사방이 탁 트인 전망이 일품이다. 북쪽으로 의정부 시내가, 동쪽으로 수락산이, 남쪽으로 도봉산과 북한산의 연봉들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특히 만경대, 인수봉, 백운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북한산의 모습에서 그 이름이 삼각산으로도 불리는 이유를 이곳에서도 엿볼 수 있다.

[사패산 정상에서 본 도봉산과 북한산]
도반들이 준비하여 온 각종 과일과 떡과 빵을 펼쳐놓고 오랜만에 함께 산행한 회포를 풀었다. 산에서 취사가 가능했던 엣시절과는 달리 산 정상에 오른 다른 사람들도 삼삼오오 모여서 가벼운 간식거리만 앞에 놓고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정겹다. 취사가 가능했던 시절의 참치를 넣은 김치찌개와 라면이 생각나고 아쉽기도 하지만, 이제는 어느 누구도 엄두를 내지 않는다. 그만큼 깨끗해진 산의 모습이 아쉬움을 능가한다.
정상에서 내려와 회룡사거리로 되돌아갔다. 오강원님이 선두에서 하도 빨리 가시는 통에 따라가느라 사타구니에 불이 났다.
당초의 예정대로 회룡사거리에서 남쪽으로 시작되는 포대능선을 따라 도봉산 자운봉 쪽으로 향했다. 이 길은 과거에 군부대의 방공포대가 있었기 때문에 '포대능선'이라 불리는데, 사패능선보다 험하여 밧줄을 잡고 오르내리는 힘들면서도 스릴이 넘치는 암릉 구간이 있다. 도중에 돼지머리 형상의 바위처럼 여러 기묘한 바위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포대능선 길]
중간에 포대능선 쉼터가 있다. 서두르지 말고 쉬어가라는 뜻이다. 쉼터가 등산로에서 조금 벗어난 위쪽에 있어 그냥 지나치기 쉬운데, 일단 쉼터에 오르면 그 가치를 한다. 도봉산의 연봉들과 수락산의 전경이 손에 잡히듯 보이기 때문이다.
[포대능선에서 바라본 수락산]
회룡사거리에서 포대능선을 따라서 가다 망월사로 내려가는 갈림길까지의 거리가 1.1km인데 오르막 내리막이 심해 1시간 넘게 걸렸다. 그리고 이곳에서 동쪽으로 500m 내려가면 망월사이다. 도착하여 시계를 보니 오후 1시 40분이다.
[망월사]
천년 고찰 망월사(望月寺)는 신라 선덕여왕 8년(639년)에 해호(海浩) 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해호 대사가 도봉산에 암자를 짓고 나라의 평안을 기원했는데, 당시 머물던 동대(東臺)의 옛 산성 이름이 망월성(望月城)이어서 절 이름을 망월사라 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해호 대사가 신라 왕궁의 중심지인 월성을 바라보며 왕실의 융성을 기원한 데에서 유래하였다는 설화도 있다.
아무튼 망월사는 창건 후 여러 차례 중창을 거쳐 근현대에 이르러서는 선풍(禪風)을 드날린 한국 불교의 중요 수행 도량이 되었다. 만공, 한암, 성월, 용성, 만해 등 근대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선지식들과 도인들이 이곳에 주석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선맥(禪脈)을 이어왔다. 그래서 망월사의 천중선원(天中禪院)은 종립(宗立) 특별선원으로 일반 참배객의 출입이 통제되는 고요한 공간으로 유지되고 있다.
도봉산의 빼어난 바위 봉우리들을 배경으로 울창한 숲속에 자리하고 있는 망월사는 가파른 산비탈을 따라 자리 잡은 전각들이 주변의 거대한 암벽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주법당인 낙가보전(=관음전) 외에 영산전, 지장전, 칠성각 등의 전각이 산세를 거스르지 않고 자리 잡고 있다.
이들 여러 전각 중 가장 두드러져 가히 망월사를 대표하는 전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게 바로 영산전(靈山殿)이다. 도봉산의 거친 자연과 인간의 깊은 원력이 어우러진 망월사의 백미이다.
주법당 위쪽 가파른 암벽 위에 홀로 우뚝 서 있는데, 좌우로는 좌청룡 우백호의 험준한 봉우리가 감싸고, 정면의 낭떠러지 건너 저 멀리 동쪽으로는 수락산이 한눈에 시원하게 들어온다. 그 수락산 위로 보름달이 떠오르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야말로 최고의 망월(望月)이리라. 앞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망월을 한 번 보고 싶다. 덧붙여 일출까지도.


[망월사 영산전]
전각 이름의 '영산(靈山)'은 석가모니불께서 법화경을 설(說)하시던 곳인 '영취산(靈鷲山=영축산으로도 읽는다)'의 줄임말로서, 영산전(靈山殿)은 '영취산(靈鷲山)의 법회(=이를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고 한다)를 상징하는 공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영산전은 '석가모니불께서 제자들을 모아놓고 진리의 말씀을 설하시던 성스러운 영취산의 법회 자리를 이 세상에 옮겨놓은 전각'인 것이다.
그래서 영산전 안에는 석가모니불과 16나한이 봉안되어 있다. 16나한은 석가모니불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제자들로서, 중생의 소원을 잘 들어주고 이타적인 영험함이 깊다고 전해져 오는지라, 예로부터 간절한 기도를 올리는 불자들이 이 영산전을 많이 찾는다. 철야기도 기간에는 스님들이 2시간씩 교대로 24시간 내내 목탁을 치며 정진하는 나한기도가 이어진다.
한편 망월사 영산전의 석가모니불의 좌우 협시불로 왼쪽에는 제화갈라바살이, 오른쪽에는 미륵보살이 모셔져 있는데(중앙의 석가모니불과 함께 목조삼존불 형태이다), 이는 과거불(제화갈라보살), 현재불(석가모니불), 미래불(미륵보살)을 상징하여, 부처의 가르침은 끊어지지 않고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산전의 석가모니불<맨가운데>과 좌우 협시불 및 16나한의 모습]
망월사를 둘러보는 것으로 이번 산행은 사실상 마무리 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후부터는 1시간 걸려 원도봉지원센터까지 내려간 다음, 그곳에서 다시 30분 걸려 망월사역까지 가 지하철 1호선에 탑승하는 일만 남는다. 망월사역 바로 못 미쳐 “락궁”이라는 상호의 작은 중식당이 있는데, 허름한 외모와는 달리 가성비 넘치는 음식이 총알 같이 나와 식사 때를 놓친 산객의 고픈 배를 어루만져 주었다(맛도 좋다^^). (끝)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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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텃골
2026.10.06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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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거사
2026.10.06 22:49
영축산(=영취산)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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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다인
2026.10.06 23:37
대단한 에너지 ㅋ~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산속으로 떠나고 싶은 생각이 절로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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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거사
2026.10.07 09:49
가끔은 산에 가서 머리를 식히는 것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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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텃골
2026.10.10 07:16
오늘은 유홍준의 文化遺産 답사기가 아니라
又民의 文化遺山 답사기를 읽네여.
5000m히말라야산이나 500m 사패산이나 힘들어 보이는 건 마찬가지.
그러나 사패산에는 역사가 있네여. -
우민거사
2026.10.10 22:39
원수 같은 고산증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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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축산이란 이름이 신성한 이름인 가 봐여.
날이 좋아 산행이 더욱 즐거우셨겠어여.
단풍이 들면 저도 산에 함 가 봐야 겠어여.
어느 산이 좋을까여?